[고윤영] 기대만큼 큰 두려움, 새 학기 증후군   2016-03-14 (월) 12:14
관리자   2,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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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14살의 나는 난생 처음 입어보는 교복, 구두, 캐릭터가 그려있지 않은 무채색의 책가방이 낯설기도 했지만 ‘나도 이제 중학생이구나’ 하는 기대감에 뒤척이며 잠을 잘 이루지 못했었다. 초등학교때와는 달리 엄청나게 늘어난 과목과 시간마다 바뀌는 교과목 선생님에 엄격한 학교 규율(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매우 엄격한 편이었다)은 사실 설레임보다는 긴장과 두려움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이보다 더 큰 긴장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은 어떤 친구들과 만나게 될까?하는 것이었다. 청소년기 새 학년이 시작 되면 부푼 기대감으로 쓰기 시작했던 일기장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의 긴장과 푸념들이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나에게도 새 학기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가 거듭되고 나이가 들어가며 익숙해지고 이제는 새로운 환경을 접하게 되면 은근히 기대감이 먼저 앞서는 걸 느끼게 된다. 어찌 보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새 신발을 신고 발이 편안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 신발을 신는다는 기쁨도 있지만 편안하게 적응하기까지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상담센터도 아이들로 붐비게 된다. 유치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다양한 증상을 보이고 있지만 많은 친구들이 새 학기 증후군이라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새 학기 증후군이라고 하더라도 부적응의 이유는 모두 다양해서 아이들마다 성장배경부터 꼼꼼히 체크해보는 것은 필수이다.  

  아이들이 호소하는 증상도 다양한데 어떤 아이는 스쿨버스는 타는 순간부터 잦은 빈뇨를 보이기도 하고, 학교까지 잘 가던 아이가 교실 문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거나, 학교에서는 급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기도 하며,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물어뜯기도 한다. 이처럼 겉으로 보이는 행동을 보고 상담센터를 찾기도 하지만,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이 없는 경우도 많다. 복통이 있는데 참거나, 쉬는 시간마다 이어폰을 끼고 엎드려 있거나 하는 행동은 아이가 말하지 않고서는 부모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런 문제를 보이는 아이들에게 학교가기 싫어서 그런다는 꾀병으로 치부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학교폭력과 같은 심각한 문제로 인해 학교 부적응에 어려움을 보이는 자녀를 보면 부모들도 한걸음에 상담할 곳을 찾는 것을 보게 된다.           

  몇 년 전 일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유정이는 아침마다 집안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1학년 때도 없었던 학교 부적응이 2학년에 올라가며 생긴 것이다. 유정이의 부모는 갑자기 이런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이해가 되지 않아 처음에는 달래주기도 하다가 말을 듣지 않자 으름장을 놓기도 했지만 유정이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루이틀 정도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하고 학교를 보내지 않다가 정말 학교를 안다니겠다고 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으로 유정이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곧 유정이를 만나게 되었다. 유정이는 부모님과의 친분으로 얼굴을 봐왔던 터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유정이는 어렸지만 학교에 가기 힘든 마음 때문에 나와 만나는 것이라고 짧게 이야기를 한 후에 미술활동을 시작했다. 유정이는 새로운 학년 적응의 어려움으로 심리적인 퇴행1)을 보였는데 유정이와의 미술치료과정은 자연스럽게 유정이가 원하는 매체와 주제를 따랐다.  사용하던 매체는 주로 점토였다.  심리적 퇴행을 보일 때에 아이들과의 미술활동도 재미있는 양상을 보이는데 어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매체를 가지고 이리저리 놀이를 하기도 하며 그림도 무언가를 그렸다기보다는 낙서와 같은 형태를 자주 보이기도 한다. 유정이도 처음에는 점토를 가지고 뭉그러뜨리거나 쪼개기도 하며 다시 뭉치기를 반복했다. 평소 유정이는 혼자서도 미술활동을 자주 하는 편이라 점토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아이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좀 더 기다려 주기로 했다. 유정이의 작품 속에는 둥지와 알이 표현되기도 하고, 학교장면이 묘사되거나 친구들이 표현되었다. 유정이는 학교에 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는지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정이의 작품 속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유정이가 표현한 알과 둥지는 지금 얼마나 엄마 품속 같은 안정감을 필요로 하는지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한 학교생활과 친구들을 그려봄으로 나는 유정이가 곧 학교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해보았다. 유정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정이의 2학년 담임 선생님은 1학년 선생님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고 하셨다. 1학년 때 선생님은 마치 유치원 선생님과 같은 인상으로 부드럽고 친절하며 잘 웃으시는 분이었지만 2학년 선생님은 교육적 철학이 분명하시고 단호해 보이신다고 하니 유정이가 겪었을 심리적 충격(?)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정이는 그 후로도 몇 번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기도 하고, 몇일 간 학교에 가지 않고 쉬게 해 보자는 나의 조언으로 자체 방학을 갖기도 하다가 다시 학교에 가게 되었다.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되고 많은 아이들과 함께 엄마도 아이처럼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 아이는 괜찮은데 오히려 부모가 불안해 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이 시간은 좀 더 세심하고 민감하게 아이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숙제는 했는지, 준비물은 챙겼는지 묻기 전에 오늘 우리 아이가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웃었는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할 때 표정은 어떤지, 잠 들기 전 내일을 기대하는지 아이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자. 우리 아이들에게 ‘처음’, ‘시작’이라는 단어가 두려움이 아닌 기대와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1) Regression: 방어기제 중 하나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을 때 이전의 발달단계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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