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방담 <담파> - 제4화 방황해도 괜찮아   2012-09-20 (목) 22:18
관리자   5,769

 
담벼락에 붙어있는 파리처럼~!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청소년 방담 담파는 10대들을 찾아가 자유로운 수다판을 만듭니다.
이들이 마음껏 떠들 수 있도록 조용히 뒤로 물러나, 그 솔직한 속내를 들어 봅니다.
담파에서 나눈 생생한 이야기들이 좋은 교육을 만들기 위한 작은 씨앗 되기를 희망합니다.
  ※ 담벼락에 붙은 파리(fly on the wall)이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들이 의식하지 못할만큼 조용히 엿듣는 것을 뜻하는 말
 
 
 
 
 
담파 제4화 - 방황해도 괜찮아
2012년 3월 15일 저녁 분당 O 레스토랑
 
 
이번에 소개 받은 두 명의 여학생은 ‘방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했다. 과연 10대들이 체감하는 방황이란 무엇일까. 방황은 왜 하는 것일까. 방황을 통해 얻는 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지난 번 1회 방담에서 만났던 소이가 떠올랐다. 다행히 소이는 자신도 그 주제라면 할 말이 있다며 오케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여학생들만 모였으니 ‘청소녀들의 방황’이라고 해도 좋겠다. 
 
 
등장 인물 :
남궁예린 _ 경기 성남 이우고 2학년   중학교 때 학교를 자퇴하고 폭풍 같은 1년을 보낸 경험이 있다. 그 시절이 너무 아팠기 때문인지 “상처와 방황 없이 잘 살면 그게 더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는 원래 진지한 것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데 학교에서는 너무 까불어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마 없을 거예요.” 
 
오예슬 _ 경기 성남 이우고 2학년   방황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1인. 시간과 기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길에서 입술에 ‘틴트’를 바르다가 아무도 없는 벤취에 살짝 묻혀 놓고는 다음 날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하고 기뻐하는 식의 놀이(?)를 종종 한다.
“아무리 나만 보는 일기장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와서 “그랬니?” 하고 말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이소이 _ 경기 용인 흥덕고 3학년   지난 겨울방학 때 난생 처음 심각한 무기력증을 경험했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산다. ‘연애를 많이 해 봤을 것 같다’는 말에 ‘다가오는 남학생들과 모조리 절친, 평친(평생친구)이 되어 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고 말한다. 고3이 된 이후 꿈을 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불안해하고 있다. 
“애들이 저한테 ‘사기당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라고 해요. 근데 사기 치는 것보다 당하는 게 낫지 않아요?”
 
소이   저 작년에 이우학교 축제 간 적 있어요. 
 
예린, 예슬   우와, 그래요? 
 
소이   뭐였더라? PPT 만들어 가지고 발표하는 ‘내 인생의 꽃’인가? 그것 참여했었어요.
 
예슬   정말요? 완전 신기해…. 
 
예린   저도 그거 신청했었는데 발표할 사람이 많다고 딱 한 명 떨어뜨렸거든요. 그게 저였어요. (웃음)
 
소이   그래요? 제 순서가 마지막이었거든요. 다들 얼마나 말을 잘하든지…. 그 사람들은 다들 좌절했다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걸 발표했는데 저는 특출한 게 없으니까….
 
예린   진짜 신기하다…. 
 
교바사   둘은 친구이고 소이는 혼자 와서 좀 서먹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런 인연이 있었군요. (웃음) 예린과 예슬이 방황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방황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게 떠올라요?
 
소이   밤거리를 헤매는 아이들! (모두 웃음)
 
예슬   저는 죽기 전에 경험 안 하면 눈 못 감고 죽을 만한 어떤 것? 그리고 성장의 밑거름? 방황이란 것 정말 해 보고 싶은데, 차마 용기가 안 나요. 
 
교바사   방황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젊었을 때 하는 것’이란 이미지가 있잖아요.
 
예슬   방황은 20대에도 하고, 30대도, 40대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린   그렇지만 아무래도 청소년 시기의 방황이 확실히 스릴 넘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책임을 덜 져도 되는 입장이니까요. 그러니까 청소년 입장에서는 무책임하게 방황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예슬   어른들이 ‘10대가 제일 좋은 거야. 그때 방황해.’ 하시는데, 그때는 어느 정도 용서가 되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어떤 방황
 
교바사   그러면 어떨 때 내가, 혹은 친구들이 방황한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소이   저는 제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을 때요. 어느 정도는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데, 견디기 되게 힘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이번 겨울방학 때 그랬거든요? 일탈하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냥 무기력해졌어요. 다른 애들은 다 정해 가는데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교바사   뭘 정한다는 거죠? 대학이나 직업 같은 건가요?
 
소이   꿈 있잖아요. 열정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꿈같은 거요. 그게 저는 아직 없어요. 어떤 애들은 미용 자격증 따겠다고 하고, 어떤 친구들은 일본어 1급 따고 ‘대학 어디 가지?’ 하고 있는데…. 저는 ‘재밌겠다’ 싶은 것만 충동적으로 하는 편이라서 그동안 재밌게 살았고 열심히는 살았는데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예요. 
 
교바사   무기력증이 찾아오니 어떻든가요?
 
소이   집에 가만히 있으니까, 뭐라고 해야 되지? 남들은 다 달려가고 있는데 나 혼자 멈춰 있는 느낌이랄까. 정말 제 주변만 검정색이고 다른 건 다 색깔이 있는 것 같았어요. 시간은 멈춰 있는 것 같고, 내가 뭐 하나 싶고…. 약간 좀 한심한 생각도 드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방학 동안 집에서 한 세 번도 안 나갔을 걸요? 애들도 안 만나고 계속 가만히 있었어요. 그랬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다행히 개학하기 며칠 전에 엄마랑 밤새 이야기하고 나서 안정을 찾았어요. 하지만 이미 너무 뒤쳐져 가지고…. 
 
예린   꿈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나는데, 선생님들이 항상 하시는 소리가 있어요. 꿈이 있으면 멈추지 말고 달려가라, 열정을 놓지 마라, 꿈에 최선을 다해라…. 그런데 문제는 꿈이 없다는 거예요. 근데 왜 선생님들은 꿈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게 아니라 무조건 달려가라고만 하시는지…. 저는 항상 그런 게 불만이었어요. 나름의 작은 목표들은 있지만, ‘진짜’ 갈망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기력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예슬   저는 방황했다고 느꼈을 때가 한 번도 없었어요. 제가 얼마나 순진했냐면, 저는 술 마시는 게 방황이라고 생각 했거든요. (웃음) 고등학교 딱 들어와서 어쩌다가 술을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이런 느낌 있잖아요? “아, 했다!” (모두 웃음) 
 
예린   저는 중 1 끝나자마자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학교를 갔거든요. 1년을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냈는데, 그때가 저에게는 큰 방황이었어요. 하지만 그 1년을 어떻게 보냈어야 했나를 돌이켜 보면, 그것 또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였던 것 같아요. 아쉽죠.
 
교바사   어떻게 보냈어요, 그 시기를?
 
예린   뭣도 아니게 보냈어요. 놀면 확실히 놀든지, 공부를 하려면 확실히 하든지 했어야 하는데…. 물론 ‘자퇴=놀았다’ 하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때 주변에 노는 애들이 되게 많이 꼬였어요. 선배들도 찾아오고……. 근데 저는 그때 너~무 외로웠어요. 제일 좋아하는 게 사람인데, 학교를 안 가니까….
 
교바사   본인은 괴로웠겠지만 1년 동안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한 셈이긴 하네요. 
 
예린   “엄마 나 자퇴할게.” “응!” 그렇게 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1년 동안은 저한테 엄청난 책임인 거예요. 저는 인가받지 않은 중학교를 다녔어요. 제가 욕심이 너무 많아요. 학교에서 1등도 하고 싶고, 검정고시도 준비해야 하는데 계속 과부하가 걸리는 거예요. 다 잘하고 싶어서…. 그러다가 선생님과 갈등이 터져 가지고…. 되게 충동적으로 자퇴서를 낸 것 같아요. 어느 날 교실로 가야 되는데, 교무실로 들어가서 자퇴서를 내고 나왔어요. 
 
예슬   저는 되게 신기한 방황을 봤어요. 제 친구가 고 1 때 죽음을 계속 생각했어요. 자살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내일 곧 죽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더래요. 몇 개월 정도 죽는다는 감정에 휩싸여 살더라고요. “죽음이라는 건 뭘까?” “이러다 확 죽게 되면 어떡하지?” 이런 얘기를 듣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 줄 수가 없는 거예요. 상대의 말에 공감하려면 비슷한 경험이 있어야 하잖아요. 아예 장르가 다르면 아무리 공감해 주고 싶어도 한계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되게 고마웠어요. 그 친구를 통해서 ‘이런 방황이 있구나.’ 알게 되어서요. 방황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매체로 알게 되는데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저런 방황이라면 해 볼 가치가 있겠다….
 
예린   저는 고1 때 한 1주일 정도, “엄마 학교 갈게!” 하고 나와서 2교시에 등교하곤 했어요. “오늘은 제 시간에 가야지!” 하고 나왔는데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교바사   그 시간에 뭐 했어요? 
 
예린   근처에 큰 교회가 있는데 벤치에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었어요…. (어떤 계절에?) 가을이요. (어땠어요?) 추웠어요. (모두 웃음) 만날 컵라면 먹고…. 그냥 가기가 싫었어요. 그런데 한번 안 가니까, 진짜 일주일을 늦게 가게 되더라고요. 
 
해답은, 닥치고 안아 주기
 
교바사   안정되지 않은 그런 시기에는 마음의 문을 열기 쉽지 않잖아요. 왜 어떤 시절에는 말없이 방문을 닫을까요? 말문도 닫고.
 
소이   제 친구가 그랬어요. 문을 잠그면 그 이유가 있을 텐데 왜 문을 열라고만 하는지 모르겠대요. 생각해 보니까 그런 거예요. 문을 잠그고, 컴퓨터에 비밀번호 걸어 놓고, 일기장에 자물쇠 채워 놓고 하는 것들이 그냥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예슬   저희 엄마도 문 잠그는 것 정말 싫어하세요. 제가 문 잠그면, 드라마에서 나오는 신들린 여자 목소리로 확 바뀌어요. (웃음)
 
교바사   그러면 방문 닫고 들어갔을 때 부모님이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소이   아무것도요.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치유가 되니까요. 
 
예린   저는 문 닫고 들어갔는데 한 시간 이내에 아무도 문을 안 열고 들어오면 울어요. (모두 웃음) 저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안아 줬으면 좋겠어요. 제발 “누가 괴롭히는 거야?!” “왜 그러는 거야?” 그런 질문 하지 말고요. 
 
예슬   저는 사실 누군가 제 방문을 열었을 때 되게 극적인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말없이.
 
예린   ‘말없이’가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예슬   정신적으로 어떤 부분이 결여가 되어 있어서 그게 고통을 주니까 조용한 곳으로 은신을 하는 거잖아요. 근데 부모님이 ‘다다다’ 퍼부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문을 더 굳게 닫아 버리게 되거든요. 그럴 때 엄마가 말없이 안아 주면 마음의 구멍이 채워질 것 같은데 말이죠. 
 
예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냥 말없이 위로해 주는 게 좋아요. 캐묻지 말고.
 
방황에 대한 생각들
 
예린   근데 저는 방황보다는 좋은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 아닐까 해요. 사람이 바닥을 치면 올라온다고 하잖아요. 그 1년을 보내고 나서도 저는 딱히 그런 느낌도 못 받았고, 방황을 통해서 크게 느낀 것도 없고…. 나란 아이도 방황을 해 봤다,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런 건 있지만요, 오히려 그것을 어필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던 지난 시간들이 정말 너무 부끄러워요. 
 
소이   근데 방황에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좀 옛날에 했으면…. 저는 그 무기력한 시기를 보내고 나름대로 더 단단해졌다 생각하고 학교에 갔는데, 겨울방학 때 애들은 뭔가를 준비를 하고 왔더라고요. 영어도 하고…. 방황은 시기를 잘 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슬   저는 모르겠어요, 말씀하신 ‘시기’라는 게 대학 때문이잖아요. 인생은 기니까 입시가 1~2년 늦어지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방황을 안 해 본 입장에서는 방황이 유토피아 같이 느껴지거든요. 거기에 발을 들이면 나란 사람이 바뀔 것이다…. 그런데 변화 이후의 모습은 예상을 못하니까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예린이는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고 그러는데, 저는 방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있어요. 
 
교바사   그래요?
 
예슬   네. 이우고등학교 입학할 때 자기소개서를 쓰거든요. 거기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이며 어떻게 극복했느냐’ 하는 질문이 있어요. 근데 나는 힘든 기억이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 청소년 누구나가 겪는 심리적 갈등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놀랄 만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기간에 최대한 많은 고민을 했고 나름의 아픔과 성장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봐 주시던 선생님이 “너는 온실 속의 화초다. 네가 이 상태로 큰다면 타인을 공감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일정 부분은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빴어요. ‘당신이 내 삶에 대해 얼마나 알아서….’ 하는 생각 있잖아요. ‘꼭 아빠가 돌아가시거나 교통사고가 나거나 누가 바람을 피우거나 이래야 인생의 큰 경험인가? 당신이 뭔데 내 삶의 고민과 좌절들을 평가해!’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떤 저자 강연회를 갔는데, 그 사람이 14년 동안 무명작가 생활을 했대요. 그분 말씀이 사람이 큰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밑바닥을 경험해 봐야 뒷심으로 올라갈 내성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때 ‘아, 나도 뭔가 경험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친구들은 “방황하지 마, 하지 마.” 그러고. 
 
예린   좀 웃긴 것 같은데? 안 넘어져 보면 막상 넘어졌을 때 좀 힘든 건 있겠죠. 근데 한 번이든 열 번이든 처음 넘어졌을 때 일어날 수 있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안 넘어지고 죽 살면 그게 제일 좋은 거겠지만. 열 번 넘어졌다고 해서 더 우뚝 서서 걸어갈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예슬   그래도 나는 죽기 전에 경험을 많이 하고 싶어요. 내가 너무 낮고 미세한 존재라는 게 짜증이 나는 거예요. 수많은 은하 중에서 태양계, 수많은 행성 중에서도 지구, 지구에서도 한국,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잖아요. 
 
예린   그렇다고 그걸 기다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살다보면 언젠가는 시련이 오게 되어 있는 거고.
 
소이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사람한테 인정받는 게 최대의 가치라면 인정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 아니에요? 근데 저는 ‘행복’이란 말이에요. 제가 학생회 활동을 해서 얻은 게 있어요. 근데 그걸 위해서 다른 걸 포기하는 게 좋은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무기력이 준 성장이 있긴 하지만, 그 시간을 불행하게 보냈잖아요? 그래서 굳이 방황을 많이 하고 싶지는 않아요. 
 
일기장, 최고의 무기 
 
교바사   그런 시기에 어떻게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그런 시기를 보내는 노하우(?) 같은 게 있어요? 
 
소이   저는 저한테 말을 많이 해요. 남들한테 약한 모습 보이는 거 의외로 안 좋아하거든요. 예전에는 남들 앞에서 울고 이런 거 정말 안 좋아했어요.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닌데 최근에 제 얘기도 하고 울기도 했어요. 일기 있잖아요? 일기가 손으로 안 써지니까 타자로 치다가 그래도 안 되니까 녹음기 (“맞아, 맞아!!!”) 들고 최대한 그 감정 그대로를 살리려고…. 학교 홈페이지 익명 게시판에 학생회 욕이 진짜 많이 올라온단 말이에요. 그럴 때 내가 나 자신한테 ‘너니까 이 정도로 할 수 있는 거야.’ 하고 말해 줬다가, ‘아니야, 강해져야 해!’ 이러기도 하고…. (웃음) 그런데 일기는 한 시간 뒤에만 읽어 봐도 진짜 오글거려요.
 
예슬   글은 쓰면서 필터링이 되잖아요. 근데 녹음을 하면 감정이나 주변의 소리가 다 담기니까…. 
 
소이   비 오는 날 슬픈 노래 틀어놓고…. (모두 웃음)
 
예린   저는 지하철에서 핸드폰에 대고 녹음한 적 있어요. 다 쳐다보는데….
 
소이   저도 버스에서 막 울면서 그런 적 있어요. 옆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웃음) 근데 솔직히 그 사람들 다 지나가는 사람이니까. (“맞아, 맞아!!”) 그러다 괜찮아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내리고…. (웃음) 저 지금도 가방에 일기장 있어요. 언제 쓰고 싶을지 모르니까.
 
예슬   저는 누가 읽을까 봐 집에 놔두고 다니는데. 
 
교바사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가 마음을 치유해 주는 것 같아요?
 
모두    “그럼요.” “진짜로요.”
 
소이   세상에서 제일 입 무거운 친구가 ‘종이’래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예슬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소이   자기하고 대화하는 거잖아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썼거든요. 일기장이란 게 글만 쓰는 게 아니라, 화가 나면 찢기도 하고, 뭘 붙이기도 하고, 사진을 붙이기도 하고…. (모두 웃음) 
 
예슬   초등학교 때 유행하던 글씨체가 있었어요. 자음은 엄청 크고 모음은 작고…. (“맞아, 맞아!!!”) 그렇게 쓰면 한 줄에 다섯 글자만 써도 꽉 차거든요. 
 
예린   그게 진짜 유행이었어요. 
 
소이   저는 어릴 때부터 일기 같은 것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유일하게 나만의 것이랄까? 정말 꼬박꼬박 썼어요. 중학교 때도 항상 쓰고요. 
 
예슬   저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 때 기록으로 못 남기면 안 될 것 같아요. 병적으로 집착할 때가 있어요. 수업하다가도 뭐가 생각나면 노트를 찢어가지고라도 쓰고, 핸드폰 메모장에 써 놓고, 손바닥에 써 놓고 그래요. 그리고 예전에는 일기 쓸 때 조금 포장을 해서 썼어요. 나를 좀 더 착한 사람으로 만들고 가녀리게 만드는 것 있잖아요. 근데 언젠가부터 최대한 사실적으로 쓰자, 해서 스타카토 문체 알아요? 딱딱 끊어서 쓰는 그런 문체로 쓰기도 했어요.(“맞아, 맞아!!!”)
 
교바사   오늘 “맞아, 맞아!‘라는 말이 정말 많이 나오네요. (웃음) 방담하면서 더 하고 싶었던 얘기나, 오늘 어땠는지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요. 
 
예린   방황했을 때 아픔들이 치유가 안 됐으면 이런 얘기 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이렇게 얘기하는 게 제가 많이 나아졌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좋았어요. 소이 언니 만난 것도 너무 좋았고, 요즘 예슬이랑 알게 모르게 약간 멀어진 듯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근데 오늘 내 친구 예슬이를 다시 찾은 것 같아요. 
 
예슬   사실 어떤 식으로라도 말을 하거나 기록을 남긴다는 건요, 상대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것 같아요. 아무리 나만 보는 일기장이라 해도, 누군가 와서 “그랬니?” 하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 같아요. 오늘 제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걸 보니까, 누군가가 나의 상태를 알아주길 바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진짜.
 
소이   누군가하고 마구 공감하는 게 진짜 쉽지 않은 것 같거든요? 오늘 되게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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